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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박상영·BTS 번역가 안톤 허의 유쾌한 문학 사랑

[책과 길]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지음
어크로스, 232쪽, 1만5800원


2022년 봄 부커상 후보작이 발표됐을 때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한국 소설 두 권이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두 권이 유색인종 번역가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건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한국 문학이 우수해서 이같은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은 나왔지만 번역이나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부커상 후보에 오른 건 원서가 아닌 번역본이었는데 말이다.

정보라의 ‘저주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국제 부문 1차 후보에 동시 지명됐을 당시에 대해 안톤 허는 “두 작품의 번역가가 같다는 사실은 우연일 뿐이었고, 번역가는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는 사람이며, 누가 번역했어도 결과가 같았다고 보는 듯했다. 한국 사회의 번역가에 대한 전반적 무관심 내지는 혐오(?)가 국수주의와 결합된 경우였다”고 회고했다.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는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일과 삶을 다룬 에세이집이다. 그는 대중이 가지고 있는 번역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깬다. 전세계에서 한·영 문학번역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은 안톤 허를 포함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들은 ‘조용히 앉아서 번역이나 하지’ 않는다. 한국 출판사를 설득해 번역권을 따내고 현지 출판사를 찾아가 제안서를 내미는 일도 번역가의 몫이다.

그간 받아 온 오해에 대해서도 유쾌하게 ‘해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포 출신일 거라 예상하지만 안톤 허(본명 허정범)는 유학파조차 아니다. 어릴 때 주재원이던 아버지를 따라가 9년 가량 해외에 거주했으나 30여년은 한국에서 살았다. 고려대 법대에서 심리학을 이중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았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는 게 인생을 대하는 안톤 허의 기본자세다. 사법시험을 권유하는 부모님의 집착을 이겨내고 문학의 길로 뛰어들었다. 앞날이 보장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잠시 생계를 유지했지만 결국 번역가를 선택했다. 모든 것은 한국문학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그는 한국 문학이 위대한 이유가 세종대왕이나 한글, 수능같은 교육체계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 대범하고 비범한 작가가 유독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톤 허는 신경숙의 ‘리진’ ‘바이올렛’, 황석영의 ‘수인’,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회고록 ‘비욘드 더 스토리’를 영어로 옮겼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제13회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 부문을 수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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