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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늙은’ 바이든을 반기는 세력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본래 수다스러운 정치인이다. 35년간 그를 담당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첫 질문에 45분을 가뿐히 답한 적도 있다. 과장을 좋아하고 재잘거리는 상인 같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지난 60년간 의회 국정연설에서 바이든만큼 말 많았던 대통령도 없었다. 올해는 9191단어를 말해 빌 클린턴이 1995년 세운 ‘최고 수다’ 기록을 한 단어 앞질렀다. 취임 이후 국정연설을 평균해도 8300단어로 클린턴(7373단어), 버락 오바마(6708단어), 도널드 트럼프(5650단어) 등 전임자들을 앞선다.

에너지 넘치는 소통을 즐기던 말쟁이 기질은 그러나 임기를 거듭할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베트남 국빈방문 일정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자러 가겠다”며 돌연 회견을 끝내려 한 장면은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바이든은 자신이 리창 중국 총리와 만난 사실을 소개하다가 뜬금없이 “자러 간다”는 농담을 했다. 이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다른 질문이 이어졌는데, 바이든 답변이 끝나기 전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것으로 회견을 마치겠다”고 말을 끊었다. 현지시간 오후 9시35분, 회견 시작 25분52초 만이다. 다우드는 “재치 있는 입담을 즐기던 남자가 재갈이 물린 모습”이라고 묘사했고, 공화당은 바이든의 고령과 신체·정신 우려를 증명하는 또 다른 사례로 추가했다. 바이든은 ‘늙고 유약한 정치인’ 프레임에 갇혔다.

바이든이 약해 보일수록 불과 세 살 적은 트럼프의 전사 이미지는 돋보이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트럼프는 자신을 ‘부패한 법무부의 마녀사냥에 맞선 순교자’로 치환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밀착도 순식간에 기회로 만들었다. 얼마 전 푸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한 긴급 현안을 며칠 안에 해결하겠다고 말한 건 좋은 일’이라 했는데, 트럼프는 “그 평가가 마음에 든다”고 반응하며 ‘쿵-짝 케미’를 보여줬다. 북한이 지난 6월 세계보건기구(WHO) 집행이사국에 선출됐을 땐 한때 ‘사랑에 빠졌다’는 김정은에게 축하 메시지도 보냈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비는 신냉전 시대 리더십 자질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 CBS방송이 유거브와 함께 진행한 조사에서 ‘지금 미국 대통령직에 적합한 스타일’을 묻는 항목이 있었는데 ‘강인함’(tough·67%)이 가장 많이 지목됐고, ‘배려’(caring·66%)가 그다음이었다. 국제 정서의 살벌한 변화 속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 등 골칫덩이 국가들의 위협이 고조된 터라 터프한 리더를 더 반기는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들 사이에서 바이든 터프 점수는 27점, 트럼프는 67점이었다. 실체와 상관없이 미국인 76%는 바이든이 국제사회에서 미국 지위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로 ‘그 시절이 나았다’(97%)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거친 트럼프의 재등장을 가장 반기는 건 중국에 매파적인 강경 보수 세력이다. 최근 헤리티지재단은 집권 2기 공화당 행정부 얼개를 기획한다며 보수주의자 350여명을 끌어모아 ‘대통령직 인수 프로젝트 2025’를 발표했는데, 920쪽 분량의 보고서에 중국 단어가 무려 500번 나온다. 미국은 중국과 수십년간 ‘전쟁 중’이라며 미국이 이를 막는 데 집중하기 위해 한국 등 인도·태평양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 증가를 요구해야 한다는 제언이 담겼다.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에 앞장서게 하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대선이 한반도 안보를 격랑에 내모는 위험한 이벤트가 되지 않게 미리 준비해야겠다.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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