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한승주 칼럼] 교사들의 ‘검은 파도’에 응답하라


아동학대 신고 남발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교사들
무기력하고 자괴감 빠져

서이초 교사 비극 이후
교육당국 대책 내놨지만
전국 교사들 죽음 이어져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 아니라는
교권 회복 4법은 통과 전망

아동학대처벌법과
아동복지법도 개정돼야
교사들 보호받을 수 있어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가 아닙니다.” 한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지난 9주 동안 교사들은 거리에서 이렇게 외쳤다. 교육 활동이 아동학대가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교육 현장에서는 이게 당연하지 않았다. 수업 중 아이가 잠을 자거나 떠들어도 꾸지람을 하지 못한다.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어서다. 숙제를 많이 내줬다고 ‘학원 공부에 지장 있다’는 학부모 민원을 받고, 월급을 쪼개 아이들에게 피자를 사줬다가 ‘식중독 걸리면 책임질 거냐’는 항의를 받는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엇나가는 걸 보고도, 공부나 간식 등 뭔가 더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훌륭한 스승이 되고 싶었으나 정작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무기력해졌다. 자괴감에 빠졌다. 교권이 추락한 우리 교단의 현실이다.

지난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2년차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등진 후 교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은 교사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며 눈물을 삼켰다. 교육당국은 그제야 무너진 교권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전국에서 교사들의 죽음은 계속 이어졌다. 대전에서는 친구의 뺨을 때린 아이를 혼낸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로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군산의 한 교사는 “업무가 두렵게 느껴진다. 자존감이 0이 됐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경기도 용인, 서울 양천구에서도 비극은 계속됐다.

지난 토요일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의 슬로건은 ‘검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였다.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은 한 명 한 명의 ‘검은 점’이 파도가 되어 공교육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였다. 이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교권 회복 4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개정안 통과에 더해 아동학대처벌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이 중 교권 4법은 지난 15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해 21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교원지위법 개정안은 악성 민원을 교권 침해로 규정한다. 교원이 아동학대로 신고된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직위해제를 금지한다.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 내용이 핵심이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보호자의 협조 의무 규정을 담았다.

남은 건 아동학대처벌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이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은 교원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올 경우 수사 시작 전 교육청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의무화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의견 청취 없이 즉시 조사에 들어간다. 못 들어줄 이유가 없다. 쟁점은 아동복지법 개정이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누구든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교사들은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서적 학대라는 말이 모호해 정상적인 교육 활동까지 아동학대로 취급받게 되고, 교사에 대한 과도한 신고를 불러온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된 이후 8년간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교사는 9910명이다. 대부분 무고성이고 기소율은 2%가 안 된다.

반론도 있다. 아동 전문가들은 교사를 정서적 학대와 관련해 전면 면책하면 아동학대를 방지하려는 법 취지가 반감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역시 일리가 있다. 아동 인권과 교권은 상충되는 것이 아닌 만큼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학교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교육청에 전담 조직을 두거나, 지역 전문가들이 아동학대 신고 남용 여부를 판단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는 일단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교권 4법은 다소 선언적인 것이라 개정된다고 해도 막상 학부모가 고소하게 되면 교사는 아동학대처벌법과 아동복지법에 따라 처벌된다. 이 때문에 교권 4법과 함께 이 두 법이 같이 개정돼야 교사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

최근 대전 교사의 추모식에 참석한 한 선생님은 “살아남은 교사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 내가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이라고 교사들은 생각한다. 이들에게 법 개정은 교육권을 넘어 생존권의 문제다. 국회가 교사들의 ‘검은 파도’에 응답할 차례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