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가정예배 365-9월 21일] 처음 된 자, 나중 된 자


찬송 : ‘사랑하는 주님 앞에’ 220장(통27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20장 1~16절

말씀 : 일이 없다는 것은 곧 굶주림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하루가 다 지나 필요하지도 않은 일꾼을 더 고용하는 집주인의 행위는 마음씨 후한 관대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특별한 사실은 지급되는 임금입니다. 아침부터 온 사람, 점심에 온 사람, 일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온 사람이 모두 동일한 임금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따져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아침에 온 사람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주인의 행위는 절대 부당하지 않습니다.

약속한 금액보다 적은 임금을 주었다면 당연히 부당한 행위이지만 일한 시간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행위일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지는 많은 불만이 이렇습니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적게 주어졌기 때문이거나, 내가 비교적 낡고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보다는 더 크고 놀라운 것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단지 어떤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천국이 이와 같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공정성은 인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감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에 감사해 본 적이 있나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그저 지나간 하루를 보며 감사한 일이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글 중에 “내가 오늘 아무렇게나 흘려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바라던 내일이었다”는 글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임금을 주는 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결정입니다. 내가 그것을 부당하다고 항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9시에 왔건 12시에 왔건 3시에 왔건 심지어 5시에 왔건 그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임금을 얼마를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람의 마음이며 그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은 우리의 자격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을 훨씬 넘어섭니다. 그러나 탕자 이야기에 나오는 큰아들처럼 우리 눈에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주변에 나보다 못한 사람이 더 큰 축복을 받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진정으로 축복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들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곳입니다.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내가 오늘 살아서 숨 쉬는 것으로도 감사하게 하시옵소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 감을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범기 목사(오솔길교회)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