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어머니 부고에도 “그 콜 받고 가라”… 끔찍했던 콜센터 [이슈&탐사]

콜센터 상담사 숨막히는 일터


오전 7시30분, 평소보다 30분 일찍 회사로 나왔다. ‘역대급 한파’가 예고된 날이라 전 직원이 30분씩 일찍 출근했다. 오늘처럼 날씨가 안 좋은 날은 종일 긴장 상태다. ‘대기콜’이 평소보다 20배는 많다. 앞 타임에 출근하는 동료들은 이미 바쁘게 전화를 받고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인입(전화가 걸려오는 것) 콜수 등을 띄우고 있는 사무실 전광판 속 ‘대기’ 숫자는 500에 육박하며 빨간색으로 깜빡인다. ‘뾰로롱’ 하는 요술봉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댄다.

콜센터의 하루

오전 10시가 됐지만 대기콜은 더 늘어 900에 다다랐다. 출근하며 받은 토스트는 먹을 새도 없다. 앞선 콜을 쳐내고 ‘전화받기’ 버튼을 누르려는데 ‘긴급출동 중복접수’ 글자가 화면에 떴다. “도대체 출동업체는 언제 오냐”는 성난 전화다. 긴급출동을 접수하고 1시간을 기다린 고객이다. 하지만 출동업체는 바쁘다며 연락하지 말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별수 없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어느덧 오후 1시30분, 점심시간이 됐다. 출근하고서 쉴 새도 없이 100콜 이상을 ‘쳐냈다’. 차게 식은 토스트를 들고 점심시간이 같은 동료와 휴게실로 가 점심을 먹는다. 다른 동료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쪽잠을 잔다. “몇 콜이나 받았냐” “요즘 일기예보만 본다” “돌아가서 콜 받기가 겁난다” 짤막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1시간이 끝났다.

오후 4시, 퇴근까지 1시간 남았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다. 20~30분에 한 번씩 최신화돼 화면에 보이는 내 이행률(15분 단위로 상담사들의 실적을 평가한 것)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팀장 자리에서도 실시간으로 이행률이 보이는 탓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헤드셋 너머에선 고객들이 “도대체 거기 앉아서 하는 게 뭐냐”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런 고객에게 “추운 날씨에 오래 기다리셔서 기분이 많이 상하셨죠”하는 ‘고차원 공감’ 멘트를 한다.

출동업체 지각으로 중요한 일을 망쳤다며 “어떻게 보상할 거냐”는 고객의 호통을 듣고 “죄송하다”를 연발하다 보니 퇴근 10분 전이다. 그사이 “내일도 ‘조출(조기출근)’ 가능한지” “퇴근 이후 지원 가능한지” 묻는 팀장의 쪽지가 날아온다. 회사가 비상 상황이라니 내일도 ‘조출’해야지 별수 있나.

이는 현대해상하이카에서 콜센터 상담사로 8년째 근무 중인 박영미(42)씨가 지난겨울 한파 때 겪었던 하루를 재구성한 것이다. 박씨는 평소 130~140콜을 받지만, 긴급할 땐 200콜 이상을 받는다고 했다. 근무시간을 8시간으로 놓고 보면 많으면 2~3분에 한 번씩 콜을 받는 셈이다. 10개 콜 가운데 1~2개는 고객이 심각하게 화를 내는 경우다. 상담사들은 일단 고객에게 공감하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도록 교육받았다.

30분 통화 마친 후 모친 빈소로

한 대형 시중은행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A씨(34)는 수년 전 콜을 받던 중 어머니를 여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입으로는 상담을 하고 있던 그는 아버지가 계속 걸어오는 전화를 받지도 못하고 “문자메시지로 보내 달라”고 했었다. 갑작스런 비보를 들은 뒤에도 그는 바로 회사를 나설 수 없었다. “네 콜은 끝까지 책임지고 가”라는 관리자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그냥 헤드셋 던지고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들 생각하지만, 상담사들은 ‘내 콜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관리자는 부고를 전해 들었음에도 A씨 옆으로 와 그를 자리에 앉히며 “무슨 일인지 알겠는데 콜은 받고 가야 된다. 네가 고객이 전화를 끊게끔 유도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A씨는 30분 이상을 통화한 뒤 고객이 전화를 끊자 그제야 울며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원청인 은행은 A씨가 울음을 참으며 수행한 콜에 50점대의 통화품질 평가 점수를 내렸다. 평소 90점대를 받아온 A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평가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평가는 정해진 기준대로 했다” “(설명한 정황은)개인 사정이라 고려해줄 수 없다”였다.

A씨의 기억이 분명한 반면 이 은행은 A씨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얼른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용역업체가 자체적으로 계약을 맺고 업무와 인사 등 모든 것을 관리한다”고 했다. 이 은행은 A씨가 모친상을 당한 순간의 업무에서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부여받았으며 추후에도 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통화품질 평가와 관련해서는 매월 협력업체당 200~250콜을 샘플링해 조사하는데, 조사 결과를 업체에 전달해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한 상황이었다면 업체가 어필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은행도 당연히 예외처리했을 것”이라고 했다.

중간에 용역업체가 있다는 이 은행의 설명은 콜센터 노동과 관련된 중요한 특성 한 가지를 나타낸다. 바로 ‘감정노동의 외주화’다. 원청업체는 직무를 세분화, 갑질에 직면하고 감정노동을 할 맨 밑 부분을 외주업체로 밀어낸다. 이런 간접고용 구조는 사용자가 책임을 덜어낼 방편이 되는데, 반면 별다른 재량권도 없고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외주업체 노동자 한명 한명의 환경은 점점 열악해진다. 원청업체가 정해주는 대로의 응대만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고객의 화는 이때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를 취급하면서 사실상 본질적인 금융 업무까지 맡을 때가 있는 콜센터 상담사들을 외주화하는 게 과연 옳은지, 그간 노동계의 지적이 많기도 했다.

이후 콜센터 노조가 생기면서 상황이 나아졌다는 게 A씨의 이야기다. 하지만 콜센터 상담사를 향한 갑질이 사라지기까진 갈 길이 멀다. A씨의 동료는 장애인 고객의 대리인을 응대하다가 상담사와 관리자가 영상통화로 무릎을 꿇고 사과한 경험이 있다. 주어진 매뉴얼대로 했지만 ‘장애인이라 무시하는 거냐’며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요구가 돌아왔다. A씨의 동료는 이 일을 겪은 후 일을 그만뒀다.

콜센터 상담사가 들은 말에서 가장 비중이 컸던 단어 ‘왜’와 ‘거기’는 세트처럼 붙어 다니며, 내가 낸 돈을 받으며 ‘편한 곳에서’ 앉아 일하면서 왜 아무런 해결도 못 해주느냐고 따지는 데 주로 쓰였다. 그보다 작은 크기로 쓰인 ‘앉아있냐’도 결국 한 세트다. 워드클라우드 작성에 사용한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모든 상스러운 말을 ‘욕설’이라는 단어로 집계했다.

“금감원 민원 넣겠다” 교묘해진 갑질

최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에서 만난 콜센터 상담사들은 악성민원의 양상이 욕설에서 교묘한 괴롭힘으로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처벌되지는 않을 애매한 범위에서 상담사의 약점을 잔인하게 파고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형태는 “금융감독원(혹은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넣겠다”며 이름과 소속을 묻는 사실상의 협박 전화다. 목소리가 작다고 트집 잡아 콜센터 상담사를 바꿔가며 복명복창을 시킨 사례, 반복적으로 수일간 전화해 “나에게 잘못한 상담사를 바꿔 사과를 시키라”고 주문하는 사례도 있었다.

국민일보가 진행한 ‘갑질-감정노동 실태조사’에서 콜센터 상담사(214명 응답)들은 감정노동 정도를 9.1점으로 평가했다. 7개 직역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불합리·불공정한 요구(86.9%), 지속적·반복적인 항의(84.6%), 인격적 모독·폭언·욕설(81.8%)을 경험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고객으로부터 들은 말’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욕설과 “(이것도 모르면서) 거기 왜 앉아있냐” “그러니까 네가 거기서 일하지”였다. “예, 아니요로만 대답해” “앵무새(혹은 기계)냐”도 자주 등장했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콜센터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외부에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은행 콜센터에서 9년을 일한 A씨는 아직도 가족들에게 직업을 말한 적이 없다. 그는 “고객한테 매번 사과만 하다 보니까 자존감이 너무 많이 깎여서 가족에게 떳떳하게 얘기할 수가 없다”며 “제 주변에 있는 분들도 여기 다니고 있다는 걸 말을 못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런 근무환경 탓에 콜센터 상담사 중에는 성대결절과 방광염 외에도 이명, 공황장애, 우울증 등을 앓는 이가 많다. 김현주 민주노총 대전본부 부본부장은 “콜센터 상담사들 여럿이 심리치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다들 우울 수치가 100점 만점에 95점은 나왔더라”고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이름만 물어봐도 숨쉬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김 부본부장은 말한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고객과 원청업체의 생각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본부장은 “콜센터 상담사는 고객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는데도 가장 무시당하는 직업 중 하나”라며 “원청이 무가치하게 생각하니까 고객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변해야 바뀐다”고 말했다.

*이행률: 15분을 한 구간으로 해 해당 상담원이 받은 콜 수, 서비스레벨(들어온 콜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 후처리 시간(고객이 요청한 걸 처리하고 다음 콜을 받기 전까지의 시간) 등을 평가해 100점 만점으로 점수화한 것. 한달 평균 75점을 못 넘으면 월급이 줄어든다.

이슈&탐사팀 정진영 이택현 김지훈 이경원 기자 young@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