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한마당] MZ 조폭

고세욱 논설위원


1997년 개봉한 한국 영화 ‘넘버3’에는 피래미급 청부폭력집단 ‘불사파’가 등장한다. 불사파는 두목 송강호에 조직원은 20대 3명뿐이다. 산속에서 뱀을 잡아 먹으며 싸움 훈련하고 합숙소에선 자장면만 먹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조직원들의 소망은 별(징역살이)을 달아 이름을 떨치는 것. 검거된 이들은 검사가 ‘범죄단체 조직’이 아닌 술값 안 낸 경범죄를 적용하려 하자 발끈한다. 검사가 배후를 대면 “화끈하게 조직으로 엮어주겠다”는 회유에 한 조직원이 “그 고생하고 양아치 취급 받을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인다. 불사파의 모토는 ‘의리, 충성, 사시미’였는데 조직원들은 자기 과시욕에 더 꽂혀 있었다.

90년대 초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폭력조직들은 상당수 음지로 숨어들었다. 그러다 SNS, 유튜브가 활성화되면서 판이 바뀌었다. 26년 전 영화 속 20대 조폭은 “장안이 발칵 뒤집어질”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꿈에 부풀었는데 현실의 MZ 조폭들은 신문, 방송보다 속도가 빠른 SNS를 갖고 자기 홍보에 나선다. 지방의 한 MZ 조폭은 인스타그램에 외제 차나 명품 사진 등을 올려놓으며 중학생을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진짜와 가짜 조폭 구분하는 법 등을 유튜브에 올려 10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신세대 조폭도 있다.

‘동류 의식’도 남다르다. 과거엔 조직이 다르면 나이가 비슷해도 ‘제껴야 할’ 적이었는데 지금은 끼리끼리 모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최근 전국 21개 폭력조직의 2002년생 조직원들이 “전국구 조폭이 되자”며 별도 조직을 결성했다가 대거 검거됐다. 약에 취한 채 롤스로이스를 몰다 행인을 치어 공분을 자아낸 ‘롤스로이스남’도 95년생 조폭 모임에 연루된 정황이 포착됐다. 조폭의 진화일지 모르지만 사회의 해악인 건 마찬가지다. 젊을 적 객기여도 현 사회 분위기상 조폭 조직과 연계되면 선처받기 어렵다는 것을 속히 깨달아야 한다. 차라리 넘버3 말미에 범죄에서 손을 뗀 불사파 조직원들처럼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정당한 땀의 대가를 느껴봄이 어떨지.

고세욱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