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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따위가… 그딴 일 하는 주제에” 서비스직 年 1200명 슬픈 선택 [이슈&탐사]

[죽음 부르는 갑질사회] ③ 그만둬, 경비는 많으니까

서울의 한 신축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가 지난 7월 주차장 입구에서 입주민의 출근 차량에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 경비노동자들이 CCTV 영상을 촬영해 국민일보에 보내 왔다. 이는 관리소장의 지시였고, 동대표도 만류해 지금은 경비노동자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 국민일보DB

외부의 갑질과 관리자의 방관으로 일하는 이가 멍들어가는 현장은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다. 감정노동자들의 일터를 보호해야 한다는 자성과 대책 마련이 계속됐지만 여전히 해마다 1200명 안팎의 서비스직 노동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감정을 숨긴 채 고객과 관리자에게 시달려온 노동자들은 “지금은 교사가 주목받지만 어디에나 늘 있는 문제였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콜센터 상담사, 아파트 경비원, 택배기사, 보건의료인, 민원 응대 공무원, 대리기사, 자영업자 등 7개 직역에 대한 ‘갑질-감정노동 실태조사’를 벌였다. 온·오프라인으로 총 1102명에게서 얻은 답변을 두 줄로 요약하면 “갑질은 커지고 있다” “악성민원을 끊어낼 재량권이 내겐 없다”였다. 감정노동자들이 고객·민원인 등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갑질 발언은 “너 따위가” “(그런 일이나 하는) 주제에” “네 월급 내가 주는데” “잘리게 할 거야”였다.

2018년부터 각종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고 소비자와 사업자가 노동자를 좀 더 배려해야 한다는 반성이 커졌다. 5년이 흐른 현재 감정노동자들은 이 사회가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감정노동 강도를 물었을 때 노동자들은 10점 만점에 7.5점이라고 응답했다. 노동자들은 “감정노동자를 향한 갑질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는 정도를 물었을 때 8.2점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불합리·불공정한 요구’ ‘인격적 모독, 폭언, 욕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항의’를 받는다고 했다. 처벌의 범위를 교묘히 넘나들며 멸시하고 괴롭히는 방식으로 갑질이 발전했다는 얘기다.


감정노동자들은 고객 응대 과정에서 심한 말을 듣고 마음을 다치지만 친절이 실적화되는 구조 속에서 표현을 못한 채 참고만 있다. 경비원을 제외한 6개 직역을 상대로 “부정적 감정을 고객에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정도를 물었을 때 노동자들은 10점 만점에 7.8점, “직장에서 요구하는 감정만 표현한다”는 정도는 7.4점이라고 답변했다.

사업장 관리자는 감정노동자들을 전혀 도와주지 못했고, 무조건 고객에게 머리를 숙이도록 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용주가 없는 자영업자를 제외하고 응답을 모은 결과 “고객 응대로 문제 발생 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진다”는 정도는 10점 만점에 3.2점,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끊어낼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는 정도는 2.5점에 불과했다.

한 콜센터 상담사는 어머니 부고를 받은 순간에도 고객의 전화를 끊을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의 아파트 경비원은 “내가 낸 관리비로 월급을 받으니 너는 내 노예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한 민원 응대 공무원은 “맡은 일만 충실히 하고 친절을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갑질사회를 극복할 방법은 서로의 배려와 존중, 사업장의 단호한 대처라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슈&탐사팀 정진영 이택현 김지훈 이경원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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