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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더러운 쓰레기더미?… 알고보면 ‘돈더미’

대기업·중견기업도 가세… 폐플라스틱·폐배터리 물량 확보 총력전

주요국에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자원 반복사용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플라스틱·배터리 재활용 사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앞다퉈 폐기물 시장에 진출하는 중이다. 한 폐기물 업체에서 휠로더가 ‘쓰레기 산’ 주위를 돌며 쓰레기 더미를 옮기고 있다. SK지오센트릭 제공

멀쩡한 대기업 직원들이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 팀원 8명이 폐기물 수거·선별 민간 업체, 섬유 조각을 얻을 수 있는 봉제 산업단지, 선거 때 쓰고 남은 현수막을 보관하는 지방자치단체 등을 분주하게 찾아다닌다. “비용을 들여 소각하거나 매립하지 말고 우리에게 쓰레기를 버려 달라”고 요청한다. 이들은 SK지오센트릭의 ‘알 인프라(R-infra)’라는 팀 소속이다. SK지오센트릭은 대규모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LG화학은 지난 6월에 LG그룹 유튜브 채널에 독특한 영상을 하나 올렸다. 영상에는 ‘리사이클 전략팀’(총 7명)이 ‘쓰레기 산’을 헤매는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화학적 재활용 원료를 확보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LG화학은 재활용 공정에 투입할 만한 품질을 확보한 쓰레기의 경우 값을 치른다고 한다. 전국 20~30개 폐기물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쓰레기에 대한 첫인상은 누구에게나 ‘더럽다’일 것이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폐기물 업체에도 비슷하게 ‘더럽고 영세하다’는 딱지가 붙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폐기물 업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기업들은 앞다퉈 폐플라스틱·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드는 중이다. 이에 따라 ‘쓰레기 피드(공급)’ 확보, 재활용 사업 ‘노하우’를 지닌 업체와의 협업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쓰레기 더미에 푹 빠진 스타트업들도 덩달아 주목을 받는다.


플라스틱·배터리 재활용 사업이 급부상한 배경에는 ‘환경 규제 강화’ ‘시장 성장잠재력’이 자리한다. 자원을 소비하고 나서, 재활용하지 않은 채 배출하는 체계(선형경제)는 자원 고갈, 쓰레기 축적, 생태계 오염, 탄소 배출 등의 문제를 양산해왔다. 이에 각국에서 순환경제로의 이행을 강제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자원을 반복 사용해 투입량을 줄이고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자는 의도다. 유럽연합(EU) 미국 등은 플라스틱·배터리 생산체제에서 재생원료 의무 사용 비중을 계속 높일 방침이다.

여기에 맞춰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마켓앤마켓은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이 올해 694억 달러(약 93조 원)를 찍고, 2030년 1200억 달러(159조원)까지 확대한다고 전망한다. SNE리서치는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의 규모를 올해 108억 달러(14조원), 2030년 424(56조원)억 달러로 추산한다.


시장 확장은 필연적으로 ‘쓰레기 전쟁’을 부른다. 재활용 원료를 확보하는 게 큰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쓰레기 원료를 공급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영세하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재활용업체 6720곳 가운데 3612곳이 종업원 5명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이었다. 10명 이하 사업장은 4955곳으로 73.7%나 됐다. 100명을 초과하는 사업장은 1.5%(98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자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폐기물 업체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2020년 한국 최대 폐기물 처리 기업인 EMC홀딩스(현 환경시설관리)를 1조원에 인수하며 신호탄을 쐈다. 2021년 6월에는 충청 지역 폐기물업체 4곳(대원그린에너지, 새한환경, 클렌코, 디디에스)을 사들였다. 지난해엔 폐플라스틱을 잘게 쪼개서 재활용(물리적 재활용)하는 기업인 DY폴리머, DY인더스 등을 인수했다. 아이에스동서도 2019년 인선이엔티를 시작으로 파주비앤알, 영흥산업환경 등의 폐기물 처리업체를 사 모았다. 보광산업은 2021년 인천에 있는 폐기물 선별장 2곳을 인수했다.

또한, 전자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업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전자 폐기물의 발생량은 생활 폐기물보다 적지만, 유해 물질을 함유해 환경에 치명적이다. 대신, 희귀금속을 다량 포함해 재활용 가치가 크다. 케이피에스(KPS)는 지난 3월에 영풍그룹, SM그룹, 풍전비철 등을 제치고 세기리텍을 333억원에 사들였다. 이 회사는 납축전지를 재활용해 연괴(배터리 주원료)를 생산한다.

여기에다 배터리를 만드는 기업들은 전기차용 이차전지 재활용에 특화한 업체를 찾는다. 삼성SDI는 삼성물산, 삼성벤처펀드와 함께 성일하이텍에 지분 투자를 했다.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도 성일하이텍과 조인트벤처 설립을 추진 중이다. 성일하이텍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전기차용 이차전지 재활용 기업이다.


아예 해외 재활용 기업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아이에스동서는 지난 8월 슬로바키아의 배터리 재활용업체인 BTS테크놀로지 지분 78.2%를 375억원에 확보했다. BTS테크놀로지는 ‘수명 종료’ 배터리의 셀과 모듈을 전처리하는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에코플랜트는 전기차용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싱가포르의 전자 폐기물 재활용 기업인 테스를 통째로 사들였다.

‘쓰레기 시장’이 각광을 받으면서 전문 스타트업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SK지오센트릭, 롯데케미칼, GS칼텍스 등은 창업한 지 8년째인 스타트업 ‘수퍼빈’에 투자했다. 수퍼빈은 폐플라스틱을 선별해 수거하고, 이를 높은 품질의 플레이크(플라스틱을 잘게 부순 것)로 만들어 판매한다.

한편 대규모 자본의 진출은 반발을 일으킨다. 쓰레기 선별·수거·운반 등에까지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몰려들자 영세 폐기물 업체들은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고 호소했다. 이에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에서 주력해온 물리적 재활용 시장과 대기업이 뛰어들고 있는 화학적 재활용 시장을 나눴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롯데케미칼, LG화학, SK에코플랜트, SK지오센트릭 등 대기업 19곳과 중소기업 단체는 이런 내용을 담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위원은 “낙후한 쓰레기 수거·선별 시설을 현대화하고 고도화할 필요성이 있다. 여기엔 자본이 필요하다. 상생협약을 맺은 이후로 대기업들은 영세 업체의 경영권을 인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분투자 형태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또한 소규모 업체들이 고품질 원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을 하는 대기업도 있다”고 전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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