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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현악 60년… “이제는 도약의 시간”

시행착오에도 스펙트럼 확장
내달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
“K콘텐츠 마지막은 국악관현악”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 제작발표회에서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악관현악의 역사는 1965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과 함께 시작됐다. 국악관현악은 문자 그대로 국악기를 서구 오케스트라처럼 배치해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국악의 현대화 담론이 거셌던 1960년대는 국악기를 서양음악 어법을 활용해 창작하고 연주하는 ‘신국악’이 거셌다. 1964년 7월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학교) 부설 국악관현악단 창단도 그 흐름 속에 있다. 하지만 9월 창단공연은 전체 레퍼토리 12곡 가운데 관현악곡은 2곡에 불과해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당시만 해도 국악관현악을 위해 작곡된 곡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국악예술학교 부설 관현악단은 오래지 않아 재정 등 운영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 다행히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재정적 후원을 받은 것이 1965년 3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관립 국악관현악단의 탄생 배경으로는 5·16 군사정변으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이데올로기에 신국악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어쨌든 국악계로서는 서구 오케스트라의 모방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양식의 탄생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후 전두환 신군부 정권도 민족주의 문화정책 차원에서 신국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덕분에 1980~1990년대 KBS국악관현악단(1985년)과 국립국악관현악단(1995년)을 포함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국악관현악단 설립이 이어졌다. 현재 전국 국공립 국악관현악단은 30여개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 일본, 북한 등 아시아의 여타 국가들이 서구 양식인 관현악단에 전통음악을 담기 위해 전통악기 개량에 적극 나선 것과 달리 한국 국악계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때문에 현대 국악계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으면서도 국악의 동시대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국악관현악은 국악계의 계륵이 됐다. 또한,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을 받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악관현악은 60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스펙트럼을 확장했으며 레퍼토리를 축적했다. 국악 작곡가뿐만 아니라 양악 작곡가, 외국인 작곡가도 국악관현악 작곡에 적극 나서게 됐다. 여기에 국악계의 젊고 패기만만한 연주자들과 함께 전문 지휘자들이 나오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이 10월 전국 8개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여는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는 국악관현악의 도약에 불쏘시개가 될 전망이다. 국악관현악이 시작된 지 60년이 되는 2024년을 앞두고 시작하는 축제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오는 10월 1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11일 KBS국악관현악단, 12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14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17일 대전시립연정국악단, 18일 전주시립국악단, 19일 대구시립국악단, 20일 강원특별자치도립국악관현악단, 21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으로 이어진다. 박다울(거문고), 이아람(대금), 민은경(판소리), 장명서(정가), 김일구(아쟁), 김준수(판소리) 등 국악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대니구(바이올린), 김성현(일렉트릭 기타)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협연자들이 대거 출연한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국악관현악을 만들고 지켜온 1세대가 (살아) 계실 때 승부를 봐야 한다”며 “대중의 수요를 찾는다면 기회가 올 거로 생각한다. 잘 나가는 K콘텐츠 중 마지막 남은 건 국악관현악”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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