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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겨주는 밤 더 많은 나를 더 깊이 은닉해주는 밤 두 손을 둥그렇게 모아 입가에 대고서 들어주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소리치고 싶은 밤 과즙처럼 끈적끈적한 다짐들이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밤 모든 게 녹고 있는 밤 누군가가 가리키는 과거가 미래라는 지당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누군가가 가리키고자 하는 미래가 과거라는 것을 눈치챘다가 미래가 더 이상 미지가 아님을 증명해보는 밤 걸어가보는 밤 모르는 데까지 돌아올 수 없는 데까지 상상도 못 해본 데까지 가는 밤(…) 꿈이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누워 있기 푸른얼음처럼 지면서 버티기 열의를 다해 잘 버티기 어둠의 암호를 굳게 믿기 온갖 주의 사항들이 범람하는 밤에 굴하지 않기

-김소연 시집 '촉진하는 밤' 중

밤에 대한 묘사가 길게 이어진다. 밤은 조용하지 않고 여러 관념들과 감정들을 불러낸다. 와글대고 무성하고 범람한다. 이 밤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푸른얼음처럼 지면서 버티기”라는 시구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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