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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인사

남도영 논설위원


인사는 정책 방향과 국정운영
기조를 가늠할 대통령 메시지

북핵 대신 좌파와 싸우는
국방장관 지명은 메시지 실패

적재적소 전문성은 사라지고
민주당과의 투쟁만 보여서야

인사 추천 검증 시스템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점검할 때

인사는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국민에게 전달한다. 국민은 인사를 통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를 예상할 수도 있고, 향후 정부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친박계인 최경환 의원을 지식경제부 장관에 기용했다. 대립하던 친박계를 끌어안고 당·청 간 교류를 넓히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으로 교체했다. 부동산시장 실패를 인정하고 공급을 늘리겠다는 메시지였다. 인사가 만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사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방부·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 장관 인사를 단행했다. 대통령실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문무를 겸비한 군사전략가’, 유인촌 문체부 장관 후보자를 ‘K컬처 도약을 이끌 적임자’,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를 ‘탁월한 정무 판단력의 소유자’로 설명했다. 장관 인사를 통해 전달하려는 공식적인 메시지다. 지금 그런 메시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고 신냉전 체제가 가속화되는 동북아 지역에서 국민과 영토를 지키는 게 핵심 임무다. 신 후보자는 과거 12·12 쿠데타를 옹호했고,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했고, 홍범도 장군을 소련 군인이라고 표현했고, 극우 집회에 참석하며 이완용을 두둔하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핵에 맞설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시점에 좌파 척결 선봉에 선 후보자가 등장했다. 난감한 일이다. 문화예술계에 기여한 공로나 업무 능력은 별개로 하더라도 유 후보자를 K컬처와 연관짓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평가가 더 정확할 듯하다. 윤석열정부에서 여가부는 폐지가 예고된 부처다. 김 후보자 지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지 여러모로 궁리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론의 관심은 김 후보자가 어떻게 장관으로 발탁될 수 있었을까에 모아졌고, 김 후보자의 공직자 백지신탁 제도 무력화 의혹이 논란거리로 등장한 상태다. 메시지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장관 교체는 사실상 실패했다.

윤석열정부의 ‘대표 장관’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한 장관이 지명됐을 때 장제원 당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은 “칼을 거두고 펜을 쥐여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사의 길 대신 행정의 길을 걸으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법무행정의 현대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사법 시스템 정립의 적임자’라던 한 장관은 칼보다 무서운 말과 펜으로 야당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4선 의원 출신 김동철 전 의원을 임명했다. 한전 역사상 첫 정치인 출신 사장이다. 200조원의 부채가 쌓인 한전의 과제는 경영 정상화와 전기요금 인상이다. 정치인 출신 사장의 역량이 발휘될 수도 있겠지만, 김 사장 임명을 보면 논공행상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한 달 뒤에는 “임명직 공무원은 자기가 맡은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정부의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 전문성, 유능함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요즘 대통령 인사 메시지에는 ‘좌파 혹은 더불어민주당과의 투쟁’이라는 문장만 읽힌다. 통일부 장관도 좌파와 싸우는 사람, 국가보훈부 장관도 좌파와 싸우는 사람이 임명됐다. 심지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도 보수 유튜버가 임명됐다. 반드시 국민통합용 인사나 쇄신 인사일 필요는 없다. 거대 야당과 맞서는 인사도 필요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을 가려낼 필요도 있다. 그렇더라도 모든 자리를 ‘이념 전사’들로 채울 필요는 없다. 윤석열정부의 국정 운영 목표가 좌파 척결은 아니지 않나.

대통령이 인사권을 가진 자리가 대략 1000개라는 사람도 있고, 8000개라는 사람도 있고, 1만8000개에 달한다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인사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추천 시스템은 잘 돌아가는지, 적재적소에 대한 판단은 제대로 이뤄지는지, 검증 시스템은 잘 돌아가는지 점검할 때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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