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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죽자’ 목 조르던 그 놈… 법원은 풀어줬다

[커버스토리] 스토킹처벌법 2년 솜방망이 여전

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교제하던 연인 B씨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뒤 2개월간 B씨를 끈질기게 스토킹했다. B씨 집 주변에서 기다리거나 오가는 그를 지켜보고, 카카오톡 메시지도 반복해서 보냈다. 계속해서 접촉을 피하자 A씨는 B씨의 출근시간을 노리고 집 앞에서 기다렸다. 도어록을 부술 계획으로 망치도 구입했다. B씨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A씨가 급습했다. 도움을 요청하며 소리를 지르는 B씨의 목을 조르고, 입을 틀어막던 A씨는 미리 준비해온 청테이프를 꺼내 들고 “조용히 해라. 같이 죽자” “너 아무데도 못 간다” 등으로 협박했다. 지난해 2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2021년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고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가 있는 상황이다. 스토킹은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고,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회적 합의에 따라 스토킹처벌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형 선고는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0월 21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선고된 스토킹처벌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636건을 분석한 결과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71건(11.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형이 가장 많은 207건(32.5%)이었고, 그다음이 집행유예로 204건(32.5%)이었다.


정 교수는 A씨 판결에 대해 “사안을 보면 출입문을 손괴하고 침입할 의도로 망치를 휴대하고, 입을 막을 수 있는 청테이프까지 준비해 가서 목을 조르고 입을 틀어막는 폭행을 하면서 ‘같이 죽자’고 협박한 것은 극도로 공포를 조성하는 위험한 행위를 한 것”이라며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에 비중을 둬 너무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피해자 의사보다는 가해자의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진단해 양형을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잠정조치를 위반했는데도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도 있다. 잠정조치는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법원이 내리는 조치들을 말한다. 서면경고(1호), 100m 이내 접근금지(2호),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3호),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4호)가 있다.

C씨는 전 연인 D씨에게 자신의 자살 시도를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직장으로 찾아가 손목을 끌고 강제로 주차장으로 데려가는 등 스토킹했다. 또 D씨가 평소 집 열쇠를 두는 곳을 알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사람이 없을 때 쌀이나 라면, 과자를 놓고 가는 행위를 10차례 걸쳐서 했다. 그는 100m 이내 접근금지 조치를 받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다. D씨 집에 꽃다발을 두고 가거나, 직장에 다시 찾아가기까지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가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직접적인 유형력을 행사한 것은 손목을 잡아끈 것 1회뿐이며 다시는 연락하거나 찾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 교수는 해당 판결에 대해 “잠정조치 위반은 가해자가 ‘공적 개입’에 정면으로 불복해 범죄성을 드러낸 것으로,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데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우려스럽다. 재범 위험성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형이 선고된 경우에도 선고된 형량은 높지 않았다.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의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인데, 실형이 선고된 71건 중 65건(91.5%)이 1년 이하의 징역이었다. 연구에서 예로 든 판결 중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된 한 사건의 경우, 연락이 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견을 잔혹하게 훼손하고 그 사체를 들고는 영상통화와 사진 등을 통해 “다음은 네 차례”라며 피해자를 협박하며 스토킹한 사례였다.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진다는 지적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19일 스토킹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스토킹·흉기 휴대 스토킹·잠정조치 불이행·긴급응급조치 불이행 4개 위반 행위에 대한 양형기준을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판결 결과뿐 아니라 법원과 수사기관 모두 가해자에게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관련 112신고건수는 2021년 1만4509건에서 지난해 2만9565건으로 폭증했다. 올해 1~7월도 1만8973건을 기록했다. 검거된 피의자들은 2021년 880명, 지난해 9895명, 올 1~7월은 6309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구속된 피의자는 2021년 7.0%였다가 지난해 3.3%로 급감했다. 올 1~7월도 3.2%에 그치고 있다.

2022년 9월 발생한 ‘신당역 살인사건’의 피고인 전주환은 스토킹 행위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피해자를 살해했다. 법원에서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이었다. 경찰 역시 다시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2021년 11월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 피고인 김병찬 역시 접근금지 명령만 내려졌을 뿐 자유롭게 활보했다. 당시 피해자는 11개월 동안 6차례, 특히 살해당한 11월에는 4차례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도 경찰이 김병찬에 대해 잠정조치 4호(구치소 또는 유치장 유치)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처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신당역 살인 사건 이후인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경찰이 신청한 잠정조치 4호 건수는 총 980건이었다. 이 중 법원이 인용한 것은 530건으로 절반(54.1%)가량에 그쳤다.

용 의원은 “수사·재판 기관은 안전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여전히 잠정조치 4호 기각률이 높은 상태”라며 “피해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 역시 “유치 조치의 경우 신청하더라도 법원에 의한 기각률이 50%를 넘어설 정도로 높아 활용 의지를 꺾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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