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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문학의 가치를 믿는다면

김선오 시인


시인으로 데뷔하고 난 뒤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여전히 혼자 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실재하는 눈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습작생 시절과 비교했을 때 작가가 돼 가장 좋았던 점은 독자들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나의 글이 더는 허공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실재하는 눈동자에 가닿는 이미지가 됐다는 것. 그들과 대화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 독자 없이는 작가도 없다는 사실을, 독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주로 서울, 광주, 제주도의 작은 서점과 도서관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언제나 재미있는 질문과 대답이 오갔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가끔은 낭독 중에 눈물을 보인 독자분도 계셨다. 모두 환대와 온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마음의 공허를 빠르게 채워주는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책을 읽는 사람이, 그중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읽고 시인의 목소리를 들으러 굳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 생각해 보아도 기이한 일이다.

종이책의 종말은 전자기기가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흔하게 대두된 화두였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자본의 논리가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와중에도 소수의 작가와 독자들이 문학의 가치를 믿으며 읽고 쓰는 행위에서 기쁨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사람이 시를 읽고 쓰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언어와 문화의 많은 비중이 문학을 기반으로 창출돼 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년 정부 예산 중 문학 관련 지원금이 대폭 삭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는 작은 서점들이 지원금을 통해 행사를 개최하고 작가를 초대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역별 문화적 인프라의 불균형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지방의 문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독립서점들에는 가혹하고 불가해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의 활성화가 기여하는 바에 대해 모두가 재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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