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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불타는 정의감 중독자들

천지우 정치부 차장


‘정의감 중독 사회’와 ‘플레이밍 사회’는 지금의 시대상을 잘 드러내는 용어다. 플레이밍(flaming)은 ‘격렬한, 불같이 화가 난, 불타는’이란 뜻의 형용사인데, 한 신어사전에는 ‘익명성과 개방성이 특징인 인터넷상에서 누군가를 인신공격하거나 욕하는 행위’라는 뜻의 명사로 올라와 있다. 일본에서는 ‘염상(炎上)’이란 표현을 쓰는 모양이다. 염상 역시 불이 타오른다는 뜻이면서 ‘블로그 등에서의 실언에 대해 비난·비방 등의 댓글이 쇄도하는 것, 댓글 여론몰이’를 가리킨다. 플레이밍은 정의감 중독과 연결된다. 정의감에 중독돼서 불타오르는 분노를 인터넷상에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정의감’은 긍정적인 의미인데 ‘중독’은 병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둘의 조합이 나타내는 의미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교권을 침해해 교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학부모들에 대한 잇단 ‘사적 제재’가 관련 사례로 우선 떠오른다. 충분히 공분을 느낄 사안이므로 사람들이 응징에 나선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사적 제재라는 방식으로 문제가 처리되는 것이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일본 앵거매니지먼트협회 대표 안도 슌스케가 쓴 ‘정의감 중독 사회’를 보면 정의감 중독은 한국 정치를 둘러싼 각종 논쟁과 악다구니를 설명하는 데 적절하다. 안도에 따르면 정의는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상당히 불분명한 때가 많고,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타인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 있다. ‘공공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나만의, 내가 속한 무리만의 정의’를 기준으로 분노를 마구 표출한다면 문제가 된다.

안도는 “지키고 싶은 가치관을 부정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 자신을 부정당하는 것과 똑같다고 받아들인다”면서 이런 위험으로부터 어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지키고 싶은, 소중한 대상에 특정 정치인을 넣으면 정치권의 온갖 소란이 다 설명된다.

만성적인 정의감 중독은 정의를 내세워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이 정체성처럼 내면화된 상태를 뜻한다. 이런 상태가 되는 이유는 그렇게 정의를 외칠 때 기분이 좋아지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일체감을 느끼고,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복잡하지만 이분법으로 바라보면 명쾌해진다. 이건 쉬운 길이다. 답이 너무 쉬우면 의심해봐야 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의심하고 숙고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안도가 말하는 해법은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이다. ‘긴 안목으로 봤을 때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전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없는 정의감과 분노는 내려놓고,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선 관심을 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허망한 얘기다. 그렇게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중독되지도 않을 것 아닌가.

정의감 중독이 한국 사회의 지나치게 뜨거운 면모라면 엄청나게 차가운 모습도 있다. 시대정신의 하나로 부상한 ‘누칼협’이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본인이 선택한 행동과 관련해 불평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단식투쟁하는 사람을 왜 거들떠보지도 않느냐는 지적에 “누가 단식하라 했냐”고 되묻는 식인데, 사실 여기에 답이 궁색하면 논쟁에 질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 시대의 각박하지만 별수 없는 세태라 할 수 있겠다.

정의감 중독도, 누칼협도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악다구니와 냉소가 뒤죽박죽된 시대를 살고 있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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