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동원 (7) 본격적 목회 시작한 서울침례교회… 목회의 애증·부흥 경험

부임 당시 침체돼 노인뿐이었던 교회
학생 선교단체와 젊은이들 모이면서
부임한지 2년여 만에 교회 가득 채워
강해설교 진행하며 가정 사역 본격화

이동원(원 안) 목사가 1980년 서울침례교회에서 열린 ‘새소망예수 1980 한미 전도대회’를 마친 뒤 교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본격적인 목회를 경험하며 초기 사역을 수행한 곳은 ‘침례교회 일번지 교회’로 불리던 서울침례교회였다. 여기서 4년 남짓 사역하면서 목회의 애증을 실감나게 경험했다. 출석 교인 300여명이 2000여명 이상 증가하는 부흥도 경험했다.

1979년 6대 담임목사로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출석 성도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본래 이 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미군 중 침례교인들의 헌금을 모아 건축한 곳이었다. 건물을 새로 지어 헌당한 뒤 서울메모리얼처치(Seoul Memorial Church)로 불리고 있었다. 오랜 역사 가운데 여러 목회자가 목회를 감당했지만, 역사적 교회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침체해 있었다.

그러나 여러 학생선교단체와 청년들이 모여와 부임한 지 2년이 지나자 청년들이 많은 교회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 예수님을 믿는 청년들의 결단, 제자로 헌신하는 청년들의 눈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후일 이 교회에서 목회자와 선교사로 헌신한 청년들이 60여명을 넘어섰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해마다 유관순기념관을 빌려 ‘새 생활 세미나’를 열면서 가정 사역을 본격화했다. 세미나 후속편은 교회를 중심으로 열었다. 그때만 해도 이름이 생소한 ‘강해 설교’를 설교 때마다 진행했다. 성경 강해의 흥미를 더하고자 수요 예배 땐 프로젝트를 활용했다. 수요 저녁 예배 시간에도 서울에 사는 교인뿐 아니라 여러 신학생,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운집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나는 성경책별 강해 설교와 주제별 강해 설교를 시도했다. 설교자 개인 취향에 따른 강의나 에세이 스타일이 아닌 본문의 의미를 드러내고 삶에 말씀을 적용하도록 하면서 설교자로서 보람을 느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금요 철야예배는 저녁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말씀이 제공한 기도 제목과 성도들의 개인 기도 제목을 두고 밤새 기도하는 금요일 밤은 불야성을 이뤘다.

그러나 오랜 역사가 있는 교회들처럼 일부 리더 교인들을 중심으로 상호 대립하던 구조적 갈등을 넘어서지 못했다. 교회 건물로는 넘쳐나는 교인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교회 후면에 있는 제일병원에서 교회 건물 매입에 대해 타진했다. 매입 조건이 너무 좋아 당시 개발되던 강남으로 교회가 대탈출 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단 일번지 교회를 옮길 수 없다며 완강하게 주장하는 일부 교인들과 다툴 자신이 없었다.

본래 갈등을 싫어하고 평화지향형 리더십을 가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도했다. 출구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마침 미국 워싱턴에서 연합 집회를 인도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교회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마음이 무거웠던 나는 해외 집회를 인도하며 안식하면서 하나님의 응답과 인도를 찾고자 했다. 오랜만에 출국한 나는 초기 사역의 순간순간을 헤아리면서 감사와 도전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