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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흔들렸지만 다잡은 ‘영원한 동심’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장욱진은 까치, 나무, 해와 달, 호랑이 등 민화에서 영감을 얻은 그림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도 1950년대 이후 고유의 세계를 구축하기 전에는 사실주의, 표현주의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표현주의가 가미된 ‘풍경’(1937, 판지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 지난달 27일 갔다. 전시장을 도는 데 추상화가 나타났다. 까치와 개, 가족이 나오는 민화풍 간결한 구상화 화가로 이미지가 공고하게 구축된 장욱진(1917∼1990)에게 추상화라니. 문득 장녀 장경수씨가 과거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남양주) 덕소에 살던 시절이었어요. 어느 날 갔더니 아버지가 추상 작업을 하고 계셨어요. 늘 하던 그림과 달랐어요. 추상화가 유행하니 흔들렸던 거죠. 가슴이 아팠어요.”

대중에게 알려진 장욱진의 이미지는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 유학 시절에도 아카데미즘 미술 교육이 싫어 하숙집에서 혼자서 자기 식으로 그린 외곬이다. 혹은 세상사에 초연하게 살아가는 신선 같은 화가 이미지다. 하지만 1960년대 한국 화단에서 유럽에서 건너온 추상화 앵포르멜이 유행처럼 번지자 덕소에서 혼자 작업하던 장욱진도 잠시 흔들렸던 것이다. 전시장에 걸린 추상화 ‘눈’(1964)은 그 시절을 증거한다.

추상화인 '눈(雪)'(1964,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하지만 흔들림은 잠시였다. 그는 곧 민화에서 영감을 얻은 고유의 작품 세계를 진척해 나갔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1970~80년대 전성기의 그림들이 탄생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캔버스에 나무와 까치, 집, 사람, 그리고 해와 달 등 즐겨 그리는 도상들이 대칭을 이루며 배치된 정다운 그림들 말이다. 그렇게 우뚝서기까지 흔들렸던 삶의 내면을 작가는 이렇게 요약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항 속에 사는 것 같다’라고.

전시된 작품을 보며 ‘동심 가득하고, 작고, 예쁜 그림’ ‘민화에서 영감을 얻은 서양화’ 등으로 이미지가 구축된 장욱진이 화가 인생 초기인 30대 시절(1950년대)에는 독자적인 세계를 탐구하며 사실주의, 표현주의 등 학교에서 배운 다양한 화풍을 시도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전통 서예에서 영감을 얻은 문자 추상도 볼 수 있었다.

문자추상식의 '반월·목(半月·木)'(1963,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장욱진 개인전은 최근 5년 사이에 인사아트센터(2017), 갤러리현대(2021) 등 화랑에서도 열렸다. 하지만 화랑 전시의 경우 전성기인 1970~80년대 말년 작품 위주로 꾸려졌다. 그런 면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이번 회고전은 한 작가의 초기 실험과 모색기의 일탈까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훨씬 인간적이다. 작가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런 인간적인 맛은 장욱진이 그린 거의 모든 작품이 쏟아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전시는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약 60년간 꾸준하게 펼쳐 온 장욱진의 미술 활동을 총망라했다. 유화뿐 아니라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심지어 도자기 그림까지 나왔다. 물량으로 270여 점이 나왔다. 그런 물량 덕분에 시류와 멀어지자 불안해하는 ‘보통 인간 장욱진’의 처연한 모습도 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백방으로 연구하고 뛰면서 자료를 모았다. 전시를 준비하며 일본에서 발굴한 1955년작 ‘가족’은 장욱진이 그린 최초의 가족 그림이다. 또한 1975년 김철순과 장욱진이 협업했으나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목판화집 ‘Zen: Wisdom of Asia(‘선: 아시아의 지혜’라는 뜻)’를 별도 제작한 단행본 ‘선(禪) 아님이 있는가’ 등이 공개돼 연구자들도 여러 번 찾게 되는 전시다.

'산과 호랑이'(1981,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장욱진이 ‘일월오봉도’, ‘까치 호랑이’ 등 민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을 하게 된 것은 국립박물관에서 일한 경험이 작용했다. 배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도안사, 제도사 등으로 일한 것으로 막연히 알려졌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45년 6·7월 국립박물관 <순검일지>’ 자료 발굴을 통해 그가 박물관 ‘진열과’에서 ‘박물감(博物監)’으로 일한 게 확인이 됐다. 박물관에서 실물 작품을 보고 전시하고 표제를 붙이는 등 실질적으로 미술 전시에 관여했으니 장욱진의 작품 세계와 민화나 고구려 벽화 등 한국 고미술의 영향 관계가 보다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신화화된 이미지도 수정됐다. 장욱진의 경우 출세의 등용문인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무관심한 채 홀로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자료 발굴을 통해 장욱진이 국전에 15차례이상 작품을 출품한 것이 확인이 됐고, 실물 작품을 전시장에서 일부 볼 수 있다. 장욱진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인간적인 전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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