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장애 등록은 못해”… 느린 학습자 엄마 눈물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경계인들] ① 교육·복지 사각지대 방치

게티이미지

‘느린 학습자’ 아들을 둔 박미경(가명)씨는 지난해 10월 지역 교육지원청을 찾았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습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느린 학습자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이들을 일컫는다. 지적장애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평균 지능보다는 떨어지는 이들이다. 지적장애 등록 기준은 지능지수(IQ) 70 이하다. 평균 IQ는 85 이상으로 본다. 그 경계 지대인 IQ 71에서 84 사이를 통상 느린 학습자로 본다. 느리지만 천천히 배워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박씨 아들을 도와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책은 없었다. 교육청에선 아이 학습 지도를 멈추고 오히려 잠시 그대로 방치하는 게 어떨지 조심스레 권했다. 담당자는 박씨에게 “지능이 더 떨어지면 지적장애 등록이 가능한 IQ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지적장애로 등록되면 여러 혜택이 있으니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적장애 아동으로 등록이 되면 교내 도움반(특수반) 수업이 가능해지고 장애인 바우처 등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박씨 아들의 지능지수는 70점대였다. 박씨는 “제가 선생님들에게 직접 도움을 구하고 해결해보겠다”며 제안을 거절하고 나왔다. 그는 “지적장애가 아닌데 장애 등록을 하면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미안해서 아이 얼굴을 어떻게 보겠느냐”며 “현실적으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지원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제안을 했겠지만 거절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박씨가 아들이 느린 학습자라는 사실을 처음 안 건 2년 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들은 또래들과 대화할 때면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학교에 가면 쓸쓸하다는 말도 했다. 우울증 검사를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박씨 아들처럼 느린 학습자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지능지수 정규분포 곡선에 따라 추정해보면 느린 학습자는 전체 인구의 13.59%나 된다. 수치상으로 700만명 이상이 느린 학습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적장애 집단(2.3%)의 약 6배에 이르는 규모다.

느린 학습자들은 학습과 일상생활, 대인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여러 지원이 있는 지적장애인 그룹에 들지도, 평균 집단에 끼지도 못하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서울의 한 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도움반에 가려고 해도 자치구마다 상황이 다르고, 도움반에서는 느린학습자에게 필요한 맞춤형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교육청에서도 여러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단계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상태”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최근 두 달 동안 9명의 느린 학습자 가정을 심층 인터뷰했다. 겉으로 보기에 또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느린 학습자들은 실상 생애 전반에 있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외부인’으로 살고 있었다.

백재연 이가현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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