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전체

[경제시평] 인플레와의 전쟁 끝났나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


우울한 뉴스만 있던 세계 경제에 모처럼 긍정적 뉴스가 들린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압력 진정이다. 지난해 초부터 미 연준은 물론 주요 국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수십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고물가와 금리 급등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고 일상적 경제활동도 큰 고통을 받아 왔다. 물가가 오르면서 점심값 지출이 늘어난 상황을 빗대어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인플레이션은 남의 나라,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물가-고금리’가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얇아진 지갑만큼이나 가계와 경제에 큰 걱정거리였다.

이런 인플레이션 우려가 최근 해소되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발점은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 둔화다. 10월 미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2%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9.1%)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물론 연준이 목표하는 2% 물가상승률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물가압력 둔화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추가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로는 우선 비용상승 압력이 완화될 것이란 점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생산과 물류, 인력공급 차질 등으로 빚어진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거의 해소됐다. 공급망 리스크 해소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미국 중고차 가격 급락이다. 부품 공급 차질로 인한 신차 생산 감소는 중고차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생산이 정상화되면서 10월 중고차 가격지수는 고점 대비 약 19% 하락했다.

예상 밖의 유가 급락도 고무적이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으로 유가 급등이 우려됐지만 국제유가는 배럴당 70달러 초중반까지 떨어졌다. 유가 급락은 물가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점에서 유가 안정세가 유지된다면 비용상승에 의한 물가 압력이 크게 약해질 것이다.

증가된 수요에 따른 인플레이션(수요 견인 인플레이션) 압력도 둔화될 조짐이다. 강한 소비 수요에 바탕해 기대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산업활동, 주택경기는 물론 소비 경기의 중요한 버팀목인 고용시장도 둔화되는 분위기다. 세계 2위 경제 규모인 중국 역시 각종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것 또한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인플레이션 둔화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금리 인상 사이클과 경기 때문이다. 미 연준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여전히 언급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 둔화는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종료됐음을 시사한다. 금리 인하를 언급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만으로도 각종 금리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소한 부채 리스크 확대만큼은 막아줄 것이다. 한국도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체율 상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둔화에 따른 금리 안정은 단비와 같다.

다양한 전쟁 리스크에 직면한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끝났다는 신호는 가계와 기업의 고통을 완화시킬 것이다. 연초부터 시달렸던 경기 침체 리스크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인플레이션 둔화가 저물가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물가-중금리’ 시대가 고착화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둔화를 반기면서도 ‘중물가-중금리’ 시대에 대비해 부채 관리에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면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만 국지전은 지속될 수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