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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한·중 존중과 환대의 기록

송세영 국제부 선임기자


동중국해는 표류의 바다
조선시대 먼바다 떠내려간
선조들 조건없이 도운 중국인들

한·중 정치적 갈등으로
비하와 비방 많아

서로 존중하고 환대하는
우호·협력의 전통 이어지길

선비 최두찬은 제주 대정현감으로 부임한 장인을 따라 1년간 제주도에 머물다 귀향하던 길에 큰 풍랑을 만났다. 조선 순조 때인 1818년 4월 10일의 일이다.

“오후 4시경에 큰 비바람이 불고… 사나운 파도가 배를 쳐서 배가 자주 기우뚱거렸다. 해는 순식간에 어둡고 캄캄해졌다. 뱃사람들이 두려워서 해결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선주와 뱃사공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목 놓아 우니, 남녀를 통틀어 50명의 사람들도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통곡하였다. … 미친 듯한 파도와 성난 물결에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이 없었다.”

혼란과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최두찬은 도끼로 급히 돛대와 고물을 찍어내게 했다. 요동치는 배를 안정시킬 요량이었지만, 배를 움직일 도구까지 없어져 버렸다. 표류의 시작이었다.

바닷물을 증류해 식수를 만들고 조금 남은 쌀가루를 물에 타서 먹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지치고 병든 가운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자 하나둘 목숨을 잃는 이가 늘어갔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절망의 순간, 기적처럼 중국 어선 두 척을 만나 중국 절강성 영파부 정해현에 상륙할 수 있었다. 표류 16일 만이었다. 중국인 관리는 최두찬 일행이 조선인 표류민으로 확인되자 예우를 갖춰 식사를 대접하고 귀국을 도왔다.

북경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 귀국할 때까지 6개월간은 존중과 환대, 교류의 여정이었다. 중국의 관리들과 지식인들은 최두찬 일행을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왔다거나 걸인과 같은 난민 처지라고 홀대하지 않았다. 존중하는 태도로 예를 갖춰 필담을 나누고 시를 주고받았다. 학식이 높은 최두찬에게 배움과 글도 청했다. 최두찬도 도움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다. 그가 표류와 귀향 과정을 기록한 ‘승사록’에는 따듯한 환대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최두찬의 표류가 있기 350년 전에 비슷한 경로로 표류당한 이가 있었다. 조선시대 표류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표해록’의 저자 최부다. 추쇄경차관이란 관직을 받고 제주에 부임한 최부는 조선 성종 때인 1488년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제주에서 나주로 귀향하다 풍랑을 만나 절강성까지 표류한다. 해적에게 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왜구로 오해받아 고초를 치르지만 조선 관리로 확인된 뒤로는 정중하게 대접받는다. 그가 남긴 ‘표해록’은 명나라 시절 다시 뚫린 대운하 등 15세기 말 중국의 사정을 생생히 기록한 견문록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국적을 뛰어넘어 구제하고 교류하며 정을 나눈 기록으로서 의미도 크다.

최두찬과 최부가 표류한 바다는 동해와 황해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동중국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이 접해 있어 동북아에서 가장 국제적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바다다. 백제와 통일신라, 고려는 이곳 바닷길을 통해 남중국과 교류했다. 멀리 일본과 중국을 오가는 해상교역로 역할도 했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중국의 대형 무역선인 신안선에서 그 규모와 양상을 알 수 있다.

동중국해 해상교역의 이면에는 왜구 등 해적의 습격과 약탈의 역사도 있다. 중국인들이 최부와 최두찬을 처음 만났을 때도 왜구나 해적, 강도로 의심하거나 이들을 두려워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방인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중국인들은 바다 위를 떠돌다 남루한 행색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조선인들에게 측은지심을 품고 조건 없이 도움을 줬다. 국제적십자나 인권선언, 해양법처럼 서양식 문화와 제도가 들어오기 전에도 인도주의적 구호와 우호·협력의 전통이 있었던 셈이다.

오늘날 동중국해는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커졌다. 식량과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중·일 3국에는 전략적 중요성이 큰 곳이다. 국제적 긴장도 높다.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싸고 오랜 분쟁을 겪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대만 문제를 놓고 해군과 공군 전력을 투입해 수시로 대치한다.

한·중 간에도 사드 문제와 한한령, 공급망 재편 등 갈등 요인이 많다. 양국의 인터넷과 SNS에 서로 비하하고 비방하는 글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 갈등이나 이해관계를 이유로 민간 교류와 우호협력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이웃인 두 나라에 너무 큰 손실이다. ‘승사록’과 ‘표해록’의 선조들처럼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며 환대하는 전통부터 되살리면 좋겠다.

송세영 국제부 선임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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